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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은 누구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할까.

by hakeen 2023. 3. 10.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독립문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독립'은 보통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데, 독립문의 '독립'도 그러할까. 독립문의 설립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독립문의 '독립'이 과연 어디로부터의 독립인지 알아보자.

 

 

 

 

1896년 6월 독립신문에는 ‘모화관에 이왕 연주문 있던 자리에다가 새로 문을 세우되 그 문 이름은 독립문이라 하고 새로 문을 그 자리에다 세우는 뜻은 세계 만국에 조선이 아주 독립국이란 표를 보이자는 뜻’이라고 쓰고 있다. 모화관(慕華館, 모화루에서 규모확장 후 모화관으로 개칭)과 영은문*(迎恩門, 건립당시 이름은 홍살문)은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청나라의 책봉사**를 맞이하는 곳이기도 했던 영은문은 임금이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오랜 세월 중국과의 종속적 외교관계의 상징적 건축물인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움으로써 조선이 더 이상 청나라의 속국이 아니라 독립된 자주국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독립문은 일본이 아닌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천명한 것이라 하겠다.

건축 당시 흔하지 않은 서구식 건물이었던 독립문은 누가 설계한 것일까. 주요하게 두 가지의 설이 있는데, 하나는 독일공사관에 근무하던 스위스 사람이 설계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인 건축기사 사바친(Sabatin, A. I. S.)이 설계했다는 설이다. 사바친이 당시 서울에 건축된 다수의 서구식 건물의 설계에 관련한 점과 독립문 건설 논의 당시인 1896년이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고 있던 때임을 고려한다면 러시아인인 사바친이 독립문에 설계에 관련되었다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아마도 사바친이 스위스계 러시아인이라고 하여, 서재필의 기억에 혼란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독립문 편액 글씨를 누가 썼는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동아일보 1924년 7월 15일 자 기사인 ‘내 동리 명물(名物)-교북동 독립문(橋北洞 獨立門)’의 내용을 근거로 친일파 이완용이 썼다는 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창덕궁 후원 현판의 글씨를 썼던 적이 있는 김가진 선생이라는 설이다. 선생은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독립협회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독립문 현판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게 남아있지 않아 의견이 분분하다. 가능성 높은 두 가설에서 현판 글씨의 주인이라 얘기되는 이가 각각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 영은문은 '은혜로운 이들을 맞이하는 문'이란 뜻으로 은혜로운 이들은 중국의 사신(당시엔 청나라)을 말한다. 독립문 바로 앞에는 영은문 기둥을 받치던 밑돌인 영은문주초(사적 제33호) 2개가 아직도 있다.

** 조선 임금의 책봉을 위해 중국에서 오는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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